'정의선의 제네시스 프로젝트'…고급차 승부수 통할까?

입력 : 2015.11.09 11:00

‘10조5500억원’

현대자동차가 작년 9월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사는데 쓴 돈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고급 자동차 브랜드 몇 개를 살 수 있는 금액”이라며 “현대차가 단숨에 고급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몽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인수합병(M&A)으로 쉽게 성장하는 것은 현대차의 방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2015년 11월 4일, 창립 48년 만에 새로 출시한 ‘제네시스’가 대답이다. 2008년에 나온 명차가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났다. 현대차그룹의 미래 성패가 달린 도전이자 모험이 시작됐다.

제네시스의 성공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의 어깨에 달렸다. 그룹의 미래이자 그룹 변신을 주도할 ‘제네시스’ 프로젝트. 정 부회장은 제네시스를 발판으로 현대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실패한 3세 경영인’이란 오명을 뒤집어 쓸까?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1월 4일 ‘제네시스’ 발표장에서 고급차 진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1월 4일 ‘제네시스’ 발표장에서 고급차 진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 샴페인 거품 꺼지기 전 수익 곤두박질…국내외 악재로 ‘위기감’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 800만대를 달성, 세계 5위 자동차 회사 자리를 지켰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샴페인의 거품이 꺼지기도 전에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8~9%를 유지하던 영업이익률이 추락했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6.4%에 불과하다. 그룹 안팎의 위기감이 짙다.

작년 말 수입차 대항마로 내놓은 ‘아슬란’ 참패가 쓰라리다. 지난 10월 아슬란을 375대 팔았다. 목표(한달 1800대) 대비 5분의 1 수준. 탄탄한 국내 판매망을 고려하면 낯뜨거운 수준이다.

전략 시장인 중국에서도 판매가 급감했다. 미국에서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의 공세에 밀리고 있다. 마케팅비를 늘려야 했고, 이익은 쪼그라들었다. 러시아, 브라질 같은 신흥 시장은 예측불가다. 널뛰는 환율 때문이다.

올해 9월 불거진 폴크스바겐 디젤차 배기가스 조작사태는 현대차에게 호재가 아니라 악재란 평가다. 뒤늦게 디젤차 시장에 뛰어 들기 위해 한창 가속페달을 밟던 현대차에게 근심거리만 늘렸다.

‘남은 건 고급차 시장뿐.’ ‘제네시스 프로젝트’는 현대차를 감싸고 있는 짙은 위기감의 산물이자 도전이다.

현대차그룹의 한 사외이사는 “세계적인 자동차 고급화 트렌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현대차”라며 “‘브랜드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고 말했다.

브랜드 명이 화두였다. 에쿠스와 제네시스를 놓고 고민했다. 1999년 출시된 에쿠스는 국내 최고급 세단이라는 인지도가 강점이다. 하지만 정작 해외 판매 실적은 부진하다.

반면 제네시스는 올해 1~9월 미국 시장에서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M5에 이어 중형 럭셔리 차종 3위(1만9146대)를 기록할 만큼 급성장 중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제네시스는 3만~4만달러에 팔린다. 5만5000달러는 되어야 미국 소비자들이 고급 차라고 인식한다”면서 “갑자기 가격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전히 다른 차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디자인, 성능, 서비스(판매와 애프터서비스)까지 기존의 현대나 기아 브랜드와 어떻게 차별화 하느냐가 제네시스 성패의 관건이란 지적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도요타는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성공시켰지만, 닛산은 인피니티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면서 “두 브랜드의 성패는 영업력과 조직력에서 갈렸다”고 했다. 앞으로 하기에 달렸고, 성패는 두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 ‘정의선 리더십’ 최대의 승부처

그래서일까? 정 부회장은 11월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네시스 발표 행사를 진두지휘했다. 2009년 ‘YF쏘나타’ 출시 이후 6년 만에 국내 공식 무대에 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재벌 그룹 후계자 다운 힘도 느껴졌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제네시스 발표 행사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김연정 객원기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제네시스 발표 행사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김연정 객원기자

정 부회장은 제네시스 엠블럼의 심장부와 비슷한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우아함을 지닌 자동차로 고급 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겠다.”

현대차그룹은 지금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한창이다. 그룹 안팎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가 사뭇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대외 활동이 부쩍 늘었다.

정 부회장은 올해 1월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5, 북미국제오토쇼 2015 참관을 시작으로 2월에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의 현대차 울산공장 안내를 맡았다.

4월에는 두바이 현대차 세계 대리점 대회, 러시아 시장 점검,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 4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6월에 열린 중국 충칭 5공장 기공식에도 참석했다. 정몽구 회장이 참석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정 부회장이 행사를 주도했다.

국내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조직을 신설, 반(反)현대차 고객과의 소통을 주도하고 있다. 고성능차 브랜드 ‘N’과 모터스포츠, 글로벌 문화마케팅 역시 그가 역점을 두는 프로젝트다.

해외 인재 영입도 직접 챙긴다. 그는 미국 유학과 해외기업 근무 경험으로 영어에 능숙하다. 외국인 임직원과도 의사 소통이 자유롭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최근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 현대디자인센터의 수장을 맡게 될 루크 동커볼케 전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고급차는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가 동커볼케를 데려온 것은 제네시스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정의선 부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정의선의 제네시스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